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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5-29 37제785차 훈화 (2025.5.)(김태완 바오로 영성지도신부님) (교본 제11장 레지오의 기본요소 / 2. 강력한 질서 체계) 레지오 마리애 규율은 레지오 조직을 유지시키고 강력한 질서를 만들기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규율만 지키는 것에만 몰두한다면 자칫 율법주의자와 같은 모습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는 순간 율법의 근간을 얘기하시던 예수님을 박해하던 무리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규율을 지키고 수호하고 있다는 교만에 빠질 수도 있고, 예수님을 박해하는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사도직 단체에 있어서 규정, 규율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별히 레지오 마리애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엄격한 규율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아가지 못하면서 규율만 지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완덕이란 믿음, 성모님께 대한 사랑, 대담성, 자기희생, 형제적 우애, 기도하는 마음, 신중, 인내, 복종, 겸손, 기쁨, 그리고 사도직 정신입니다. 이 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을 위하여 레지오의 규율이 있는 것이고,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지켜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평의회에 들어오기 전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고, 평의회를 하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자리와 교회 안에서 살아가고 봉사하는 모습을 살펴봅시다. 그리스도인으로 완덕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레지오 마리애 규율을 지키고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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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4-28 154제784차 훈화 (2025.4.)(단장 : 김태완 바오로 영성지도신부님 훈화 자료 전달) (교본 제11장 레지오의 기본요소 / 1. 개인성화 - 그 목적과 방법)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뿌리를 둔 참 신앙인은 인간의 한계성을 벗어나 주님의 방식에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사랑, 정의는 때로는 주관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의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는 절대적이며 탈인간적인 순수한 사랑이며 순수한 정의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것을 온전히 담아내고 표현하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자신을 버린다.’(마태 16,24)는 의미,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마태 6,24)는 의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모습입니다. 레지오 단원은 각자의 봉사를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영혼 구원을 합니다. 이 봉사는 ‘레지오 단원이기 때문’에 하는 의무적인 봉사가 아니며 활동 보고를 위한 봉사도 아닙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하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온전히 일치하시고, 아들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몸소 살아가신 성모님을 본받고자 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삶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여느 그리스도인 보다 더욱 개인의 성화를 위해, 성모님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성화된 레지오 단원의 봉사를 통해 세상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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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3-17 227제783차 훈화 (2025.3.)(김태완 바오로 영성지도신부님) (교본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 3.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 우리가 익숙한 세상의 방식 안에서, 또 개인의 삶 속에서 좋은 것, 유리한 것, 좋아하는 것, 편한 것을 찾습니다. 때로는 수많은 것 중에서 주류를 이루거나 중심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 이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거나 때로는 방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만 주어지지 않으며 그러한 것만 선택하여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안좋은 것, 불리한 것, 좋아하지 않는 것, 불편한 것이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인간적인 시선으로 고통의 의미를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위 ‘좋으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분, 전능하신 분께서 왜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신 길을 살펴보고 묵상해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고통이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그 고통이 왜 필요한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과 기쁨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온전한 자기 내어 놓음(희생, 수난, 죽음)이라는 고통의 과정(세상의 관점, 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고통)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완전하고 순수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르고자 하는 부활의 삶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고민과 순명의 시간, 아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하셔야 했던 고통의 시간 앞에 서 계셨습니다.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겪으셨음에도 성모님께서 사도들 곁에 머무르시며 교회의 어머니로서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 예수님의 고통에 온전히 함께하시며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모습을 레지오 단원들은 본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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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6-05 16제786차 공지사항 (20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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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5-05 220제785차 공지사항 (202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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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5-04-07 316제784차 공지사항 (20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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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4-07-13 3,321쁘레시디움 월례보고서 2024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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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4-07-13 3,290쁘레시디움 사업보고서 2024_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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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아 2024-07-13 1,578쁘레시디움 간부추천임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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