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 바오로 영성지도신부님)
(교본 제9장 레지오 단원과 그리스도 신비체 / 3. 신비체 안에서 겪는 고통)
우리가 익숙한 세상의 방식 안에서, 또 개인의 삶 속에서 좋은 것, 유리한 것, 좋아하는 것, 편한 것을 찾습니다. 때로는 수많은 것 중에서 주류를 이루거나 중심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고 그 이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거나 때로는 방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만 주어지지 않으며 그러한 것만 선택하여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때로는 안좋은 것, 불리한 것, 좋아하지 않는 것, 불편한 것이 다가올 때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인간적인 시선으로 고통의 의미를 바라보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위 ‘좋으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분, 전능하신 분께서 왜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영광에 이르신 길을 살펴보고 묵상해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고통이 어떠한 의미인지 그리고 그 고통이 왜 필요한지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부활의 영광과 기쁨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온전한 자기 내어 놓음(희생, 수난, 죽음)이라는 고통의 과정(세상의 관점, 인간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의 고통)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이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고통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완전하고 순수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르고자 하는 부활의 삶은 사랑의 완성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고민과 순명의 시간, 아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감당하셔야 했던 고통의 시간 앞에 서 계셨습니다.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겪으셨음에도 성모님께서 사도들 곁에 머무르시며 교회의 어머니로서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 예수님의 고통에 온전히 함께하시며 하느님의 사랑에 일치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성모님의 모습을 레지오 단원들은 본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