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실

귀중한 경험과 자료를 나누어 주세요!!

나눔 게시판

 

사도직 신학 - xii 쪽

작성자 레지아 날짜 2025-03-15 10:52:53 조회수 120

 

[번역]

 

  레지오는 우리의 모후께 정상적인 신심 즉,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신심을 실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의가 우리를 멀리 이끌어 이 통찰의 결과로서 자신을 봉헌하는 행위가 따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친히 그분의 어머니를 사랑하기를 계속하시기 때문이며, 우리의 자녀다운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정도까지 확장되도록 우리를 촉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성모님의 아들이 되고자 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수천 수만의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하신 당신의 어머니를 비할 바 없는 사랑으로, 천사들과 성인들 전체에 대한 사랑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세라핌에게도 주지 않으신 특권을 성모님께 내리셨습니다. 그분은 성모님을 다른 누구와도 다른 역할로 당신의 구속 사업에 참여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회 안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성모님의 영광을 -성령을 통해- 주재하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만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 20)이라면, 내가 성모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본성의 궁극적인 모습이시기 때문에 성모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그분의 사랑과 하나일 뿐이고, 우리 안에서 항상 새롭게 이 사랑을 실천하고 표현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 1, 24)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자신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의 지체인 바오로 안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께 대한 그분의 효성에서 부족한 것을 내가 내 자신 안에서 보충하여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레지오는 단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성모님을 사랑하기를 열망하고, 성모님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려고 애쓸 뿐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계획하신 것이기에 레지오는 조금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레지오는 교의적으로 그 이상의 독창성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전통을 충실하게 따르는 - 어떤 경우에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 것입니다. 이것이 레지오의 이상이자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레지오 영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교회의 자녀들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유산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특징들을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때로 레지오가 요구하는 자격 요건(*역주: 선서)이 놀라움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레지오가 특이함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충만하고 활기찬 신앙을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많은 소위 '열심한' 신자들은 그들이 받은 세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을 왜곡된 기준에 의해서 판단하는 대신에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가진 가치의 척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다음 쪽> 사도직 신학 - xiii쪽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